[대구 달성공원]
대구 달성공원(달성토성)은 1980년대 후반 대구 청춘들에게 가장 오랜 역사적 숨결과 아련한 향수가 공존하던 만남의 광장이었습니다. 거대한 토성으로 둘러싸인 넓은 잔디밭과 키 큰 나무들, 그리고 당시 대구 유일의 동물원이 있던 이곳은 돈 없는 고딩들이 부담 없이 찾던 최고의 산책로였습니다. 특히 주말이면 벤치에 앉아 라디오 카세트(붐박스)로 음악을 듣거나 서로의 고민을 나누던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했던 곳으로, 늘 시끌벅적하게 사고를 치던 남고생들도 이곳의 호젓한 흙길을 걸을 때만큼은 사춘기의 진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꿈을 고백하곤 하던 낭만적인 공간이었습니다.

1980년대 말, 매일같이 터지는 사고와 미친개 선생님의 몽둥이 속에서도 우리 독수리 5형제에게 아주 가끔은 고요한 숨표 같은 날이 찾아오곤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 그랬다. 기말고사를 코앞에 두고 가슴을 짓누르는 성적 걱정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춘기 남고생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날. 우리는 평소처럼 동성로나 롤러장에서 가오를 잡는 대신, 오래된 흙길과 커다란 고목들이 늘어선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 ‘달성공원’의 토성 둑길을 조용히 걷기로 했다.
그날은 덕구조차 영자를 쫓아다니며 장국영 빙의 쇼를 하지 않았다. 철수의 손에 들린 커다란 빨간색 요요(YOYO) 라디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이문세의 밤의 디스크쇼 오프닝 음악만이 우리들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잔잔하게 퍼질 뿐이었다.
1. 달성공원 토성 길과 독수리들의 쉼표
우리는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토성 언덕길을 일렬로 걸었다.
철수는 아버지가 사준 프로스펙스 단화의 앞코로 애꿎은 돌맹이를 툭툭 찼고, 나와 광팔이는 늘 짝퉁 티가 날까 봐 조심조심 걷던 ‘나이스’ 운동화의 끈을 오늘만큼은 느슨하게 풀고 편안하게 발을 디뎠다.
언제나 앞코가 터져서 엄지발가락이 마중 나와 있던 상구의 ‘까발로’도 오늘따라 조용했다. 상구는 둑길 옆에 피어난 민들레 홀씨를 톡 꺾어 들고는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후우 불어 날릴 뿐이었다.
“야... 우리 고3 대면 진짜 놀 시간 아예 없겠제? 매일 밤 11시까지 학교에 갇혀서 수학 정석만 파야 대는 거 아이가.” 광팔이가 잔디밭에 대자로 훌쩍 누우며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늘 깐족거리던 녀석의 목소리에 은근한 쓸쓸함이 묻어났다.
2. 거인 아저씨의 그림자와 철없는 꿈
토성 길을 내려와 동물원 원숭이 사장 앞을 지나갈 때, 저 멀리서 달성공원의 명물이자 대구의 전설인 ‘거인 아저씨(류기성 님)’가 푸른색 제복을 입고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2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키로 공원을 순찰하며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던 아저씨의 모습은, 언제 봐도 신비롭고 거대했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거인 아저씨가 지나가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야, 저 아저씨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이 우째 보일까? 우리처럼 매일 자잘한 걱정 하는 게 되게 조그맣게 보이겠제?” 덕구가 턱을 굄 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언제나 홍콩 영화 속 주윤발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소리치던 덕구였지만, 오늘만큼은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열일곱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3. 라디오 주파수와 대구여고 목소리
해가 서서히 뉘엿뉘엿 저물어가며 달성공원의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붉은 노을빛이 길게 내려앉았다. 철수가 라디오 카세트의 안테나를 길게 뽑아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 지직거리는 소음 끝에 대구 MBC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청취자 사연 신청곡이 흘러나왔다.
[다음은 대구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영자 학생이 보낸 사연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과 입시 공부에 지치지만, 주말에 바라보는 대구 하늘만큼은 언제나 푸르렀으면 좋겠어요. 힘든 고2 시절을 같이 버티고 있는 친구들과, 늘 우리 주변에서 우당탕탕 소란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동네 남고생 친구들에게도 이 노래를 전합니다.’]
라디오 스피커에서 영자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 우리 다섯 명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찰나의 정적 속에서 덕구의 귀가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가 친 온갖 대참사(단팥빵, 솜사탕, 미러볼 폭발) 때문에 영자가 우리를 싫어할 거라 생각했는데, 라디오 너머로 들려온 그녀의 진심 어린 사연은 찬 바람 부는 사춘기 남고생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가득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4. 별이 빛나는 토성 아래에서
라디오에서는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이 잔잔하게 흘러나왔고,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노을이 저무는 달성공원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상구는 주머니에서 소중하게 아껴두었던 삼립 단팥빵 하나를 꺼내 더 이상 던지거나 장난치지 않고, 정확하게 5등분으로 뜯어 우리들의 손에 하나씩 쥐여주었다. 낡은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달콤한 팥소를 우물거리는 동안, 저 멀리 대구 시내의 가로등 불빛들이 하나둘씩 보석처럼 켜지기 시작했다.
“야, 우리 내년에도, 대학생이 대서도, 나중에 아저씨가 대서도... 매년 이맘때 대면 다 같이 여기 와서 단팥빵 갈라 묵자. 약속하는 끼다.” 덕구의 말에 철수도, 광팔이도, 나도, 그리고 늘 말이 없던 상구까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5. 촌스러워서 더 빛나던 우리들의 밤
매일같이 우당탕탕 소동을 피우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던 독수리 5형제였지만, 그날 밤 달성공원의 푸른 토성 아래서 나누었던 이야기만큼은 그 어떤 홍콩 영화의 명대사보다 진지하고 뜨거웠다.
비록 내일 아침이면 다시 학생부 미친개 선생님의 살벌한 조례가 시작되고, 짝퉁 나이스를 신은 채 좁은 교실 구석에서 수학 공식과 씨름해야 하는 팍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주머니 속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주파수와, 서로의 미래를 묵묵히 응원해 주던 친구들의 어깨 온기. 1988년 가슴 시리도록 푸르던 대구의 봄날 밤, 우리들의 철없던 청춘은 달성공원의 깊은 나무 향기를 품은 채 조금씩, 그러나 아주 단단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추억 아이템]
- 달성공원 거인 아저씨 : 1970~80년대 대구 달성공원을 지키던 전설적인 마스코트(고 류기성 님). 2m 25cm의 거구로 제복을 입고 공원을 순찰하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그 시절 대구 시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아날로그 영웅이다.
- 요요(YOYO) 라디오 카세트 : 80년대 후반 청소년들의 필수품이었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밤마다 주파수를 맞추어 라디오 방송을 듣고 공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하던, 그 시절 청춘들의 감성 충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