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운동화]
1980년대 후반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를 흉내 낸 ‘짝퉁 운동화’가 흔했다. 특히 나이키를 본뜬 ‘나이스’ 같은 상표는 값이 저렴해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신었다. 디자인은 비슷했지만 로고나 이름 철자가 어설프게 달라 친구들끼리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형편상 정품 운동화를 사기 어려운 집도 많아, 시장이나 동네 신발가게에서 이런 제품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청소년 소비문화의 한 단면으로 남아 있다.

1980년대 대구,
그 시절 우리들의 뜨거웠던 여름과
촌스러운 낭만을 담은
[대백시계탑, 멈춰진 우리들의 시간]
연재를 시작합니다.
100화에 걸친 추억 여행,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아스팔트보다 뜨거웠던 건 ‘신발 계급도’
1988년의 대구는 여름이 오기도 전부터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듯 뜨거웠다.
우리 집 안방 TV 속 손범수 아나운서는
1988 서울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고2인 나에게 더 중요한 건
‘내 발에 무엇이 신겨져 있느냐’였다.
당시 우리 ‘독수리 5형제’의 권력 구조는
신발 브랜드로 결정됐다.
나 : 시장통표 ‘나이키’ (자세히 보면 체크 표시 끝이 살짝 굽은 ‘나이스’)
철수 : 아버지가 사준 진퉁 ‘프로스펙스’ (우리 중 유일한 금수저)
광팔 : 나보다 조금 더 짝퉁 티가 나는 ‘나이스(NICE)’
덕구 : 검정 고무신은 아니지만, 정체불명의 ‘슈퍼카’
상구 : 브랜드고 나발이고 늘 발가락이 튀어나와 있는 ‘까발로’
2. 덕구와 전설의 ‘스카이 콩콩’
사건은 방과 후, 학교 뒤편 공터에서 터졌다.
덕구가 어디서 주워왔는지
시뻘건 ‘스카이 콩콩’ 하나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야, 이거 타면 키 180cm까지 큰단다.
니들 주윤발 알제? 윤발이 형님도 이거 타고 홍콩 밤거리를 누볐다 카대.”
말도 안 되는 덕구의 구라에 우리는 홀린 듯 줄을 섰다.
3. 대구여고 장만옥의 등장
그때였다.
이 동네 남고생들 사이에서
‘수성구의 장만옥’이라 불리던
대구여고의 퀸카,
영자가 자전거를 타고 공터 옆길을 지나가는 게 아닌가.
찰나의 침묵.
남자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광팔이가 무리수를 던졌다.
“영자야, 이거 그냥 스카이 콩콩 아이대!
이건 ‘중력 가속도를 이용한 고고도 도약 장치’라는 거다. 함 봐라!”
광팔이는 미친 듯이 발을 굴렀다.
깡! 깡! 깡!
쇳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고,
광팔이의 몸은 점점 높이 솟구쳤다. 영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공이었다.
4. 스프링은 자유를 원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만물에는 ‘피로 누적’이라는 게 있는 법.
광팔이가 “영자야! 내 멋있제!”라고 외치며
공중에서 손을 흔드는 순간,
스카이 콩콩의 스프링이 ‘보오옹~’ 하는 괴음과 함께 탈출해 버렸다.
“어... 어어??”
중력을 거스르던 광팔이는
그대로 수직 낙하했고,
하필이면 그 밑에는
어제 내린 비로 고여있던 거대한 흙탕물 웅덩이가 있었다.
철퍼덕!
광팔이의 ‘나이스’ 운동화는 진흙 속에 처박혔고,
얼굴은 흡사 화성침공의 외계인처럼 변했다.
이때 옆에서 지켜보던 상구가 무심하게 한마디 던졌다.
“야, 광팔아. 니 신발 '나이스' 아이고 '노이즈(NOISE)'로 바꼈다. 진흙 소리 죽이네.”
5. 100원짜리 행복의 시대
영자는 비명을 지르며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아 도망갔고,
우리는 배를 잡고 바닥을 굴렀다.
“야 이 문둥아!
윤발이 형님이 흙탕물에 다이빙하는 거 봤나!”
“아이고 내 나이스...
이거 시장 아지매가 물 절대 안 빠진댔는데!”
흙탕물 범벅이 된 광팔이를 끌고
우리는 만화방으로 향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시절.
우리는 라면 냄새 가득한 만화방 구석에서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를 흥얼거리며,
내일은 꼭 진짜 나이키를 신고 영자 앞에 서겠노라 다짐했다.
[오늘의 추억 아이템]
스카이 콩콩 : 키 큰다는 부모님의 유혹과 함께 80년대 동네를 주름잡던 마법의 탈것.
나이스(NICE) : 나이키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시장 경제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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